사는 이야기 104

다시 봄이다.

한옥에서 4번째 맞이하는 봄이다. 게으른 블로거에게도 글을 올려 화사함을 전하고 싶게 하는 계절이다. 명자나무와 목련은 벌써 꽃이 졌고, 수사해당화가 한창이다. 나무에 핀 꽃들은 주연이라 눈에 띄지만, 바닥에서 올라와 피어나는 야생화도 들여다보면 주연 못지 않다. 정겨운 할미꽃은 올해도 피어주었다. 작년에 5포기 심었던 수선화가 반가웠고, 꽃잔디와 미니송엽국도 화사하다. 4월 초순의 한 낮은 햇살이 따갑고 그늘에서는 서늘하다. 게으름을 피우며 야외의자에서 추리소설을 읽다가 발만 햇볕에 내놓아보았다. 좀 따갑다 샆으면 양반다리로 그늘로 올렸다가 서늘해지면 다시 발을 햇볕속으로 쭉 뻗어 온도를 조절하니 딱이다. 한가로운 4월의 일상이다.

사는 이야기 2022.04.12

전기밥솥

한달여전 전기밭솥을 바꿨다. 밥이 맛없다고 압력솥으로 바꾸라는 얘들의 성화에도 3년을 괜찮다고 눙치면서 버텼다. 아까워서도 아니었다. 10년전 이 밭솥을 처음 구입할때만 해도 온실이 나에게 그렇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 몰랐었다. 그냥 어쩌다가 끼니때가 되면 필요하지 싶어서 최소형으로 일반 전기밥솥을 구입했었는데, 온실에서 7년, 이사와서 한옥에서 3년을 쓰게 되었다. 지금도 정리하고 온 온실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게 저려온다. 그래서 이 밭솥을 바꾸는게 온실에서의 친구를 떠나보내는 거 같아서 내내 망설였나 보다. 작은 아들은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주며 "밭솥 영정 사진이네 "하고 웃었다. 한달여가 지난 지금 새로 사온 비싼 전기압력밭솥은 예전 밥솥에 비해서 확실히 ..

가을 나들이/기장 아홉산숲

그전부터 가보려고 했던 기장의 아홉산숲을 방문했다. 대숲과 금강송군락이 인상깊었다. 기둥처럼 우뚝우뚝 서 있는 소나무군락지는 늠름하다못해 장엄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대나무 숲에는 시간여행을 상기시키는 커다란 기둥 2개가 서 있었다. 나무들이 커질수록 가지들을 쳐주고 정리하는 게 큰 일일듯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남평 문씨 집안처럼 40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숲을 지키고 가꿔온게 극히 드물어서 이렇게 굵은 소나무 숲과 대나무 숲을 구경하는 거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가을나들이/부산 금강식물원

오래된 온실이 인상깊은 금강식물원에 다녀왔다. 1966년에 인가받아 1969년에 준공 개원한 역사 깊은 식물원이다. 입구의 등나무 굵기에서, 메타세콰이아의 우람함에서,시멘트 의자들의 이끼에서, 낡은 정자의 기둥에서... 50여년의 세월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특히나 온실에 들어선 순간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시간마저 잊은 듯 했다. 관엽들이 빽빽히 들어 앉은 오래된 시멘트 선반은 물속에 들어 앉기도 하고, 작은 숲속 길마냥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이 되어 어서 오라 반겼다. 유리가 쩍쩍 갈라지고 틈사이마다 피어난 이끼마저도 정겹게 느껴졌다. 작아서 귀여운 구름다리와 개울물이 가을이라 수량이 줄어 초라했지만 여름철에는 계곡이 잘 어우러질 거라는 즐거운 상상이 든다. 문닫은지 오래인 매점 부근 작은 ..

가을나들이/경주기림사

시부모님을 모시고 경주 기림사 구경에 나섰다. 기림사는 국화꽃이 지천으로 피어서 일부러 가을에 간거마냥 우리를 반겼다. 알록달록 피어난 국화에 취해서 경내를 돌아다닌다보니 곳곳에 조성된 수공간이 너무도 잘 어울려서 감탄을 자아낸다. 신라시대 선덕여왕때 창건되어 원효대사가 중창해서 그 역사야 말할나위 없지만, 오래된 목조 건물이 주는 세월의 두께가 엄숙하게 했다. 시어머님이 말씀 한마디 없이 용연폭포를 다녀오시는 바람에 시아버님과 법당앞에서 기다리고, 남편은 찾으러 다니는 소동이 벌어졌다. 차 앞에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주차장이 보이는 식당에 앉아 목이 빠지라고 보고 있는데, 드디어 어머님이 보였다. 점심을 같이 할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 티는 안 내었지만, 까맣게 타들어 갔을 ..

가을나들이/부산 화명수목원

남편의 추천으로 부산 화명수목원을 찾았다. 코로나로 좋아하고 궁금해 하는 온실을 못 보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다음에 와서 볼거리를 남겨둔 셈이다. 끝부분에 있는 숲전망대까지 둘러보았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라 구경하고 올라가다보니 힘든지도 몰랐다. 군데군데 앉을자리도 있었고, 잘 관리된 나무들이 보기 좋았다. 전정이 잘된 향나무의 수형에서 정원사의 연륜어린 고수의 솜씨를 느꼈다. 역시 정원수는 때맞춰 다듬어져야 한다.